도영도영이가 소개하는 올겨울 스타일링
아티드

습관적 거짓말에 
무너진 신뢰

브랜드 가이드

탭1

에이카 화이트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의 창립 멤버인 서인재 대표가 오롯이 자신만의 브랜드인 '에이카 화이트(AECA WHITE)'를 론칭했다.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 베이직한 컬러, 직접 개발한 시그니처 원단으로 면 소재의 에센셜 라인을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는 에이카 화이트는 트렌디한 요소를 접목한 컬렉션 라인과 외부 레이블 또는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을 시즌별로 발표하고 있다. 예쁘지만 불편한 옷보다 편하고 튼튼한 옷. 입는 옷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는 것이 아닌, 입는 사람에 따라 옷이 달라 보이는 것.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브랜드. '옷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는 에이카 화이트의 가치관이다.

국내 1세대 스트리트 브랜드인 브라운브레스의 공동 대표였던 그가 음악, 특히 힙합이라는 장르에 빠져들었던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언제부터 옷을 좋아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학교 교실보다도 명동의 백화점과 이태원 옷집, 압구정 나이키 매장이 더 편하고 익숙했다.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 있었어요.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나 리복의 샤크 농구화를 신고, 라벨이 보이는 겟유즈드 바지에 체크 셔츠를 앞 춤만 넣어 입는 게 최고로 멋진 룩이었죠. 중학교 무렵에는 동대문이나 이태원에서 서태지가 신던 에어포스 원을 따라 사서 신고, 카피 제품인 줄도 모르고 좋아하고 그랬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이태원 형들에게서 슈프림이나 보이런던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정보를 얻었고요. '흑인 필'을 내고 싶어서 엄청 큰 청바지를 입고 즐겨 듣던 음반 부클릿을 보면서 매칭하기도 했죠."

막연하게나마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TV 채널을 돌리다 나온 유선 방송의 패션 쇼를 보면서부터다. 서점으로 달려가 패션 디자인 관련 서적을 뒤적인 그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술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한다. 의상학과라는 전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 주변의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기 바쁜 반포에서, 그는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는 튀는 아이였다.

공부는 여전히 뒷전이었지만, 미대 진학을 위해 고 1때부터 입시 미술 학원에 다녔다. 3학년 때는 아예 학교 직업반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며 어렵사리 지방대학교의 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대학교였어요. 매일같이 명동과 이태원을 쏘다니다 나주에서 생활하려니 지루하더라고요. 휴학하고 서울에서 공익 근무를 하다 보니 학교로 돌아가기가 더 싫어졌고요. 당시 심심할 때마다 해외 힙합 레이블 홈페이지에서 머천다이즈 아이템을 구경했는데, 몇몇 '후진' 아이템을 보면서 '내가 해도 이보다는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공익 근무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는 작은 브랜드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360사운즈 크루들과 어울리면서 이태원 패션 숍을 함께 드나들고, 옷을 만들거나 디제잉 파티를 여는 과정을 지켜본 것도 과감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때 만든 브랜드가 좋아하는 숫자인 '85'에서 이름을 딴 '에잇파이브(Eightfive)'다. 이태원 가게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만든 티셔츠를 팔기도 하던 중 그는 공통점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힙합을 좋아하고, 막상 브랜드를 시작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또래들은 이후 10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한 브라운브레스의 동료들이다.

4명의 청년들은 2006년 '브라운브레스’를 런칭하였다. 서인재 대표는 디자인보다 세일즈 마케팅에 집중하기로 역할을 분담한다. 오프라인 매장의 위치를 정하거나 백화점 관계자들을 만나고, 외부에서 일을 따오거나 친구들과 일을 벌이는 역할이었다.

"한동안 각자 해오던 일이나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서 브라운브레스를 병행했어요. 일일이 몸으로 부딪치면서도 가족처럼 즐겁게 일했죠. 사기를 당한 적도 있지만, 회사는 지속적으로 커졌고요. 매출이 성장하고 식구들이 늘어나는 걸 지켜보면 흐뭇했어요."

소규모 브랜드는 어엿한 기업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1세대 스트리트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총 100여 곳의 딜러 스토어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인생을 걸다시피 일한 10년이었다. 그 동안 제대로 갔던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 단 한 번뿐이었다.

"많이 지쳤어요. 2015년 6월부터 일을 쉬었죠. 여행도 가고 아기랑 놀아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니 참 '나쁜 사람'이더라고요. 욕심이 많고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만 생각했어요. 대표로서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혼자 막 먼저 가버린 거예요. 타협이나 포용도 모르고. 결국 연말 쯤 브라운브레스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났다. 결혼식에서 친구들과 단체 사진만 총 4번을 찍었을 정도다. 하지만 막상 브라운브레스라는 간판이 없어지고 나니 스스로가 작아졌다. 그럴 즈음 아는 형님의 소개로 현재 에이카 화이트를 함께 전개하고 있는 JNFM(주나패밀리)의 이준화 대표를 만나게 된다.

"준화 형은 동대문에서 원단 제조만 20년을 하셨어요. 원단은 누구보다 잘 아시지만 브랜드를 이끌어보신 적은 없었죠. 브랜드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셨던 거예요. 둘이 처음 만나 잠깐 이야기해보고 바로 같이 해보자고 결정했어요. 저도 형도 앞뒤 재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에잇파이브를 만들었던 10년 전이 마음만큼은 훨씬 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브라운브레스를 성공시켰다는 히스토리 때문에 사람들이 갖는 기대치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준화 대표와 만나 퀄리티 좋은 원단을 직접 제조할 수 있게 된 것을 어떻게 강조할지 고민하던 중 '블랭크(Blank)' 콘셉트가 떠올랐다. 베이직한 품목, 심플한 디자인과 편안한 핏, 무채색 위주의 솔리드 컬러. '보여주기' 위한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은 모두 빼버리고 내실만 남기는 것.

"쉬는 동안 내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얼마나 신경 쓰는 사람이었는지 깨달았거든요. 성숙하지 못했죠. 옷을 보고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슈프림을 입는 사람은 '스트리트 브랜드를 좋아하는구나', 랑방을 입는 사람이면 '돈 좀 있나 보다' 같은. 저도 그런 편견을 갖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는데, 굳이 그래야 되나 싶더라고요. 명품을 입고 든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속이 채워지지 않을수록 더 화려하게 포장하는 경우도 많고요. 에이카 화이트에서는 겉치레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어요. 옷이 사람에게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입는 사람에 따라 옷이 다른 느낌을 갖게끔 비워내려고 했죠."

서인재 대표는 적어도 패턴과 디자인 면에서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인정한다. 도움을 요청한 곳은 스펙테이터의 안태옥 대표다. 평소 알고 지내면서 존경해오던 그에게 에이카 화이트의 콘셉트를 이야기하고 봉제 방법과 패턴 잡는 법 등을 함께 상의한 것이다. '핸드 스티치'라는 시그니처도 안태옥 디자이너와의 대화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2016년 3월, 에이카 화이트가 정식 론칭했다. 서인재 대표가 에이카 화이트와 어울릴 법한 원단의 느낌을 이야기하면 이준화 대표가 편직을 해오는 방식으로 시그니처 원단이 개발됐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들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 원단으로 구현해내는 작업은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였다. 마치 아티스트의 창작 과정과도 같았다. 엄청난 양의 원단 샘플을 고르는 동안 '고급스러움', '부드러움', '견고함' 등 에이카 화이트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정리됐다.

"이 시그니처 원단은 다른 곳에서 유통되지 않아요. 에이카 화이트만을 위해 만들어졌고 에이카 화이트에서만 쓰이죠. 모든 제작 방식이 다른 면과 달라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단모가 아닌 장모로 실을 뽑고, 그 실을 두 번 꼬아서 편직하거든요. 염색할 때도 최대한 데이터를 뽑아서 톤을 비슷하게 맞추고요. 효모를 집어 넣는 바이오 워싱, 자체 개발한 SWDC 등의 가공을 거치면서 원단이 부드러워지고 은은한 광이 나요. 가공 과정 하나하나 비용이 발생하지만 감수해요. 50번 이상 빨아도 세탁을 견디게 된 것은 좋은 원사뿐 아니라 여러 가지 가공법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면 소재' 하면 바로 생각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에이카 화이트의 목표거든요."

에이카 화이트의 에센셜 라인은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을 클래식한 핏으로 표현한다. 동일한 제품들이 매 시즌 조금씩 보완되고 업그레이드된다. 시즌에 따라 트렌디한 컬러나 소재는 좀더 패셔너블한 컬렉션 라인 쪽에 적용한다. 2016 F/W 시즌 처음 선보인 컬렉션 라인에는 옷의 각을 잡고 실루엣을 살려주는 자체 개발한 코튼 100% 네오프렌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에센셜과 컬렉션 라인을 아우르는 에이카 화이트의 미니멀한 아이덴티티는 론칭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16 S/S 에센셜 라인의 프리젠테이션 장소는 소설호텔이란 곳이었어요. 베뉴가 특이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주셨죠. 첫 시즌부터 비이커에 입점하고 바이럴도 잘 되면서 이슈가 됐어요.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면서는 단골 고객들이 생겼고요. 선물하겠다고 하나 사갔다가 다시 방문해서 150만원 어치를 사간 고객도 있어요. 작년에 나간 피티워모 첫 시즌 반응도 괜찮았고요. 이번에 두 번째로 나간 피티 워모의 오더 마감이 4월인데, 바잉이 꽤 들어오는 듯해요."

브라운브레스 시절 '프로젝트 B'를 통해 무형문화재 김대석 부채 장인, 자동차 리스토어 브랜드 모헤닉 개라지스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했던 그다. 브랜드의 포인트를 아티스트와 연결하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풍성하고 감도 높다. 한국적인 디자인 헤리티지를 스트리트적으로 풀어내는 브랜드 이세(IISE)와의 2016 F/W 콜라보레이션도 그랬다. 이세가 디자인하고 에이카 화이트의 면 원단으로 제작한 한복 재킷과 팬츠 세트는 순식간에 품절됐다.

"에센셜 라인에서는 네크라인을 비롯한 패턴이 살짝 달라졌어요. '라이트 웨이트(Light Weight)' 시리즈에 들어가는 원사를 바꿨고요. 좀더 밀도 있으면서도 가볍고 고급스러운 터치가 더해졌죠. 너무 디테일한 변화라 제 자기 만족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에이카 화이트를 많이 입어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품목에 있어서는 에센셜과 컬렉션 모두 피케와 헨리 네크 셔츠가 추가됐고요. 피케 셔츠의 원단도 밀도가 높아요. 실제로 보면 차이를 느끼실거예요”

기존의 남성 라인에 이어 여성 라인도 론칭했다. 키즈 라인도 준비 중이다. 서인재 대표가 자신과 아내, 부모님과 아들이 다같이 입을 수 있는, 일종의 '패밀리 룩'을 구비한 브랜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여성 라인의 첫 시즌 역시 정사이즈의 티셔츠, 포켓 티셔츠, 베이직한 원피스 등 지극히 기본적인 아이템들로 구성된다. 숄더 부분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밑3단에 트임이 들어가는 등 '편안함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에이카 화이트의 기준이 적용된 것은 멘즈 라인과 마찬가지다.

"옷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입고 있는 옷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멋진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그래서 그 사람이 입으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옷이 에이카 화이트라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한남동 서플라이 서울에서는 'AECA WHITE CONCEPT STORE x kwangho lee'가 열리고 있다. 디자이너 이광호를 비롯한 아티스트 6명의 그룹 '서플라이 서울'의 공간에서 3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콘셉트 스토어는 에이카 화이트의 키워드인 '미니멀'과 '하이 퀄리티'를 디자이너 이광호가 재해석한 결과다. 소재를 중시하는 에이카 화이트의 가치관은 재료에 관심 많은 그의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콜라보레이션을 먼저 제안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광호 작가가 이야기한다.

"서울숲에서 열린 에이카 화이트의 2016 F/W 프리젠테이션 장소가 딱 제 작업실 맞은편이었어요. 준비 과정부터 지켜보면서 옷을 직접 만지고 입어보는 동안 브랜드에 흥미가 생겼죠. 콘셉트도 너무 좋았고요. 그때부터 기회가 되면 꼭 같이 뭔가 해보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당시 제가 기획하고 있던 공간인 서플라이 서울에서 에이카 화이트의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게 된 것이고요."

S/S17 컬렉션 전 상품과 더불어 서플라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이광호와 에이카 화이트의 협업 제품이 옷이 아닌 조명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광호 작가가 에이카 화이트의 아이덴티티를 극대화시킨 조명의 이름은 'Column of Light(빛의 기둥)'. 옷을 포함한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까지 차차 확장해나가고 싶다는 서인재 대표의 장기적인 플랜이 이광호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광호 작가는 앞으로도 일종의 컨트리뷰팅 아트 디렉터로서 에이카 화이트와 지속적으로 협업할 의향이 있다. 그 방식은 이번처럼 프리젠테이션이나 행사가 될 수도 있고, 조명 같은 소품을 넘어 본격적인 가구 라인이 될 수도 있다. 서인재 대표가 말을 이었다.

"에이카 화이트를 입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대변하고 싶어요. 브라운브레스 때도 그랬지만, 패션 브랜드라고 해서 옷만 만들면 재미없잖아요. 평소 광호 형 작업이 멋지다고 생각해오던 차에 형이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숍이 생기면 시즌마다 형과 상의해서 인테리어 콘셉트를 바꾸거나, 형이 늘 입고 다니는 작업복 점프 수트를 에이카 화이트 원단으로 만들어봐도 괜찮을 듯해요."

10년간 만들어온 시스템이나 데이터 없이 다시 원점에서 출발한지 세 시즌이 지났다. 현재의 상태가 1000이고 목표가 1이라면, 1이 되기까지 부단히 덜어내며 갈 길이 한참 멀다. 몸이 힘들고 가족에게 미안한 것을 제외하면 그는 모처럼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현실에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만의 공식이 생겨나고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심플하면서도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 AECA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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