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첫 정규 앨범은 무려 밴드 결성 9년 만에 발매됐다. 수록된 10곡 전곡에 대해 프론트맨 그렉 곤잘레스가 직접 작성한 코멘터리를 공개한다.

도영도영이가 소개하는 올겨울 스타일링
아티드

습관적 거짓말에 
무너진 신뢰

29MHz

탭1

시가렛 애프터 섹스 Cigarettes After Sex

거의 10살 무렵부터 습관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었다는 그렉 곤잘레스는 2008년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이름으로 텍사스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브루클린으로 옮겨 현재의 멤버들을 만나면서 4인조 밴드 형태를 갖췄고 2012년 EP &lt;I.&gt;를 발매한다. 솔로 프로젝트 당시 그의 관심사는 마돈나의 1980년대 싱글을 비롯해 이레이저, 뉴 오더, 더 스미스,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등 다양한 밴드를 옮겨 다녔는데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EP를 발매하면서 그는 앞으로 해나갈 음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공간을 채워나가는 연기같이 나른하고 몽롱하게 퍼지는, 관능과 우울을 더한 드림 팝. 사려 깊고 부드러운 보컬이 밴드 이름과도 맞아떨어지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렉 곤잘레스의 목소리는 성별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중성적으로, 독특하지만 낯설긴커녕 달콤한 속삭임처럼 편안하게 귀에 감긴다. 여기 입체적이고 꽉 찬 공간감의 앰비언트 사운드가 따라온다. 소박하지만 드라마로 가득 찬 멜로디는 지루할 틈이 없고, 한 줄 한 줄 눌러쓴 가사는 잠언에 가깝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와도 같은, 그리고 그런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되어도 어울릴 음악이다. 해외 매체들이 인터뷰에서 ‘영화적’이라는 표현과 ‘프렌치 뉴 웨이브 필름’, ‘누아르’를 언급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짐 자무시의 최근 영화들도 떠오른다. 실제로 비디오 소매업을 하신 아버지 덕분에 VHS 테이프로 가득 찬 집에서 무료 데모 테이프, 수많은 영화에 둘러싸여 자란 곤잘레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무드, 느낌, 감정을 작업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완성된 음악이 사람들을 차분해지다 못해 때로 잠에 빠져들게도 한다는 데 그는 의외로 자부심을 느낀다. 스스로 잠을 청하기 위해 약 대신 ‘레코드로 채워진 약장’을 찾는다는 그는 자신의 음악이 ‘뮤직 테라피’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면 당신을 괴롭히는 것들과 거리가 먼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래의 메시지가 무엇이든 당신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들어다 놓을 것이다.” 가사를 수차례 편집하는 건 듣는 이가 슬픔에서 빠져나오길 돕기 위해, 모든 구절이 강렬하게 다가가길 원해서다.

9년 동안 정규 앨범 한 장 없었으면서도 시가렛 애프터 섹스는 유튜브를 통해 신곡을 공개할 때마다 조회 수 수백만을 기록했다. 야금야금 불어난 팬 중에는 기약 없는 내한을 기다리는 국내 팬들도 많다. 드디어 첫 앨범이 발매된 건 불과 몇 달 전. 동명의 음반 &lt;Cigarettes After Sex&gt;에 대해 &lt;NME&gt;는 “페스티벌에서 반한 사람과 이들의 공연에 가라. 키스쯤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라는 찬사를, &lt;가디언&gt;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미지의 앰비언트 팝 밴드”라며 별 4개를 부여했다.

<i>Cigarettes After Sex &lt;Cigarettes After Sex&gt; (2017)</i>

곤잘레스는 곡 작업을 할 때면 모티브가 되는 기억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공연에서도 눈 감고 그 곡과 관련된 기억을 불러낸다고. 가사에서 드러나듯 대부분의 모티브는 옛 여자친구 혹은 영감을 선사한 여성들이었기에 음악평론가 정민재는 앨범을 ‘서로 다른 주제와 소재, 표현 방식으로 써 내려간 사랑 노래의 모음’이라고 요약하기도 한다.

수록곡 10곡의 모티브가 되는 경험들을 그가 직접 작성한 코멘터리 전문을 하단에 공개한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을 ‘트랙 바이 트랙’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레이블에 보내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lt;Cigarettes After Sex&gt; 앨범 코멘터리

<b>01 ‘K.’</b><div>(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Affection’은 고향에서 알던 여자아이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그녀는 어느 10월 초 일주일간 날 보러 뉴욕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곡은 그녀와 함께 뉴욕을 돌아다니며 보낸 아름다운 시간에 관한 노래다.</div>

<b>02 ‘Each Time You Fall In Love’</b><div>기본적으로 어떤 로맨스나 연애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곡이다. 내가 항상 다른 무언가를 찾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런 점 때문에 매번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됐다.</div>

<b>03 ‘Sunsetz’</b><div>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부모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떠날 때마다, 그녀는 내가 운전하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집 앞에서 바라보곤 했다. 매번 이 의식을 반복하던 그녀의 이미지가 언제나 남아 있다. 2절 가사에는 우리 둘이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 표지, 특히 &lt;The Abortion: An Historical Romance 1966&gt;에서 사용한 연출을 재창조해 사진 찍고 싶다고 이야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쉽게도 그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진 못했지만 그 아이디어가 이 곡에라도 보관될 수 있어 기쁘다.</div>

<b>05 ‘Flash’</b><div>몇 년간 지지부진했던 전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끝난 뒤 쓴 곡이다. 그토록 오래 지속한 무언가가 끝나고 나니 아주 짧은 순간처럼 느껴져 이상했다. 이 곡의 브릿지는 영화 &lt;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gt;에서 손님들이 함께 식사 중인 장면이 사실 관객을 앞에 둔 연극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div>

<b>06 ‘Sweet’</b><div>한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던 여자에 관한 이야기. 그녀에게 빠져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우리 둘이 함께한다는 것의 좋은 점을 모두 표현하고 싶었다.&nbsp;</div>

<b>07 ‘Opera House’</b><div>어느 봄, 나는 아마도 역대 최악이었던 고열에 시달리며 일주일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지막 며칠 간은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스스로를 일으켜 뭐라도 써야 했다. 단 몇 시간 만에 ‘Black Satanic’이라는 가제의 곡을 다듬어지지 않은 데모로 녹음하고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몇 주 뒤, 나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영화관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중 쉬는 시간에 다큐멘터리 &lt;버든 오브 드림스&gt;를 보게 된다. 아마존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려고 애쓰는 남자에 대한 영화 &lt;피츠카랄도&gt;를 끝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르너 헤어조그 감독의 끈질긴 투지에 감동(해 이 곡을 완성)했다.</div>

<b>08 ‘Truly’</b><div>짧은 유럽 투어가 끝난 뒤 여름의 한복판에 겪은 달콤한 랑데부에 대한 곡.</div>

<b>09 ‘John Wayne’</b><div>가까운 친구가 실연당한 뒤 그 관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담아 ‘I Want a Fight’라는 곡을 쓴 적이 있다. 고전적인 서부 느낌이 좋은 노래였는데 그는 노래에서 자신을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마침내 그 여자의 사랑을 얻는 영웅으로 설정했다. 몇 년이 지나 친구는 마음을 정리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다른 여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과거가 다시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가 썼던 노래를 떠올렸고, 그는 마치 스스로 말했던 ‘운명의 잔인한 손’에 또 한 번 대항하는 영웅이 된 것 같았다.</div>

<b>10 ‘Young &amp; Dumb’</b><div>한여름 밤, 나는 녹음을 하기 위해 여러 친구들을 부모님 집의 뒷마당으로 불렀다. 우리가 이전에 시도했던 ‘Angel Baby’의 커버 곡에 쓰인 백킹 트랙 위에 곡을 쓰기 위해서였다. 가사는 지난 몇 년간 내가 만난 여자친구들과 주고받았던, 냉소적이고 귀여우면서도 야한 구체적인 농담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들 중 여럿이 역시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런 여자들이 많을 법한 나이트 스폿을 찾아 나와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나는 늘 찬성이었다.</div>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영상과 음악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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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 Time You Fall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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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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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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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Live at Studio Brussel in 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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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ection’ & ‘Apocalypse’ Live for ARTE Concert